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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에 관하여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쓴다. 글을 안 쓰는 동안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 창업기도 마무리 지어야 하고, 그동안 읽은 책들도 업데이트 해야 하는데. 뭐라고 써야 할 지 아직 결정을 못한 일들도 있고, 잊어버린 일들도 있다. 이러나 저러나 잘 살아있고, 또 뭔가 조금씩 하고 있다.
“덕의 기술”이라는 책을 읽었다. 상훈형의 추천이었다. 형도 추천은 했지만 막상 내가 읽을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생각만큼 까다롭지 않아요. 추천해주시면 뭐든 읽습니다. 지금은 진채형이 추천했던 “성격의 탄생”을 읽는 중이에요.
어느 샌가 주변에서 더 이상 보기 어려운, 그러니까 원래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버린 것들이 있다. 식당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나, 주말이면 목욕탕에 다녀오는 가족들의 모습, 비온 다음날이면 보이던 민달팽이, 지렁이, 뭐 그런 것들. 사라져버린 것들이 아니라, 그냥 내가 더이상 그것들이 없는 환경에 있게 된 탓이다. 민달팽이, 지렁이도 어딘가에는 있을 거고 목욕탕에 다니는 가족들도 있을 테다. 담배 피우는 식당도 아직 어딘가에 어떤 모습으로든 있겠지.
덕에 관한 이야기도 내 주위에서 사라져버렸다. 사람은 어떤 때에 행복한가? 부는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 건강, 정직, 진실은 인생에서 어떤 의미인가? 용서와 복수사이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이웃과 가족과의 관계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이 모든 가치들을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자칫 숨이 막혀버릴 것만 같은 이 질문들과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한 지리하고 뜨거운 대화가 사라져버렸다. 좋은 투자처와 누구에 대한 험담과 연예인 얘기들과 쇼츠와 알림이 이들을 잡아먹었다.
이들이 잡아먹은 것은 덕에 관한 이야기 자체 뿐 아니라, 나의 행복이기도 하다. 부에 대한 지나친 욕심, 잘못 정의-그 마저도 대충-한 행복관, 그리고 소음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는 진정 행복하기가 참 어렵다. 300년 전에 살았던 아저씨가 기도문처럼(실제로 기도문도 포함되어 있음) 줄줄 들려주는 이야기가 딱 좋은 타이밍에 내 인생에 와주었다.
올해 한 여러 결정들과, 개인적인 실수 속에서 마음이 혼잡했다. 아직 혼잡하다.
인생에 대해서 왜?라는 질문을 계속 하다보면, 결국 믿음의 영역에 다다른다고 나는 믿는다. 숫자나 논리로 설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가치, 덕에 대한 개인적이고 깊숙한 믿음. 그 믿음의 성격이 사람의 성격을, 인성을, 인생과 행복을 결정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신을, 사후 세계를 믿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선함을, 인류애를, 진실과 정직의 힘을, 그리고 이 모든 선에 대한 실행이 가져올 행복을 믿기로 더욱 깊게 결심했다.
그 편이 더 멋있기 때문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세상에 현이가 살았으면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