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란 단어는 나에게 꽤나 무거운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그랬고, 11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날 이후로도 그러했다. 왜 그 말이 나에게 그토록 무거운 말인지를 적으려면 여백이 부족하기도 하고, 아직 온라인에 터놓고 이야기할 정도로는 준비가 안됐으니, 그냥 그런 것으로 하자.
다다음주면 어느덧 결혼한 지 3년이다. 스무살의 날 지금의 나로 만들어 준 아내와 함께한 지는 그러니까 어느덧 13년이 다 되어간다는 뜻이다. 스무살 때부터, 내 꿈은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었다. 스무살 때는 스물 다섯이면 내가 결혼해서 아빠가 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스물 다섯살에는 늦어도 스물 여덟에는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서른셋의 한 해가 채 백일도 남지 않았다.
이제 겨우(혹은 어느새 벌써) 삼십년이 넘게 사는 동안, 참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깨닫는다. 왜 이걸 이제야 알았을까 후회할 때가 점점 많아지고, 깨닫는 것들은 갈수록 단순하고 명료한 명제들이다. 단순한 것들을 실행하기가 정말 쉽지 않지만, 내가 조금씩이나마 계속 나아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언젠가, 잘 되면 해야지'라는 꿈은 안 꾸는 것만 못하다. '로또만 되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서 행복하게 평생 살아야지'라는 문장은 아무 가치가 없다. 가치를 굳이 찾자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점점 행복과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정도. '언젠가 준비가 다 되면 아기를 낳고 행복하게 사는 좋은 아빠가 되어야지'라고 생각했다. 불투명한 꿈을 강하게 가질수록 좋은 아빠라는 꿈은 점점 멀어졌다. 우리는 다행히 그걸 너무 늦지 않게 알았다.
좋은 아빠가 된다는 것은 과정이다. 아이와 함께하는 삶 속에서 수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현명하게 대처하고,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아내와 자주 손을 잡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최대한 시간을 내어서 아이를 꼭 안아주고, 핸드폰을 만지는 모습 대신 책읽는 모습을 보여주고, 내 삶을 아이에게 욱여넣지 않고 아이의 삶이 피어나도록 도와주는 것. 상상만으로는 절대 준비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래서, 내 꿈이 더 멀어지기 전에 아빠가 되기로 결심했다. 영원히 오지 않을 좋은 아빠가 될 준비가 다 되었을 때를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하루하루 조금씩 좋은 아빠의 모습이 되기 위해 노력하면서, 그렇게 꿈에 조금씩 다가가면서 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