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이야기
이전 이야기(고객은 우리를 모른다)를 지난 7월 8일에 썼으니까 어느 새 1년이 넘었다. 기록을 남기겠다고 해놓고 1년만에 글을 쓰자니 참으로 민망하다. 그래도, 하지 않는 것보다 늦게라도 하는 것이 훨씬 덜 부끄러운 일이니 다시 글을 남긴다.
근황
이번 주제에 대해 쓰기 전에 간단히 그동안의 일들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Oo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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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R 기준, 매달 10% 내외로 성장하고 있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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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등하원을 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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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는 쉽지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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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이가 너무 좋다.
그만 해야 할 이유가 너무 많다
다행히 많진 않지만 돈을 벌고 있고, 다행히 아이에게 충분하진 않지만 꽤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 큰 행운이다. 현재가 행운임에도 불구하고, 그만 해야 할(혹은 그만 하고 싶은) 이유가 참 많다. 남이 시키는 일이 아닌 내 일을 하면서 배우는 여러 가지 중 하나는, 그만 해야 할 이유는 언제나 있고, 점점 늘어난다는 것이다.
팀(혹은 서비스)에 대한 인수 제안이 있었다.
첫 제안은 서비스 초기에, 그러니까 서비스를 인수하기에는 매출이 너무 보잘것 없을 때였다. 서비스를 빠르게 만들어나가는 모습을 좋게 봐주신 분의 제안이었다. 두번째 제안은 비교적 최근의 것으로, 서비스를 만드는 것과 서비스를 스케일하는 것은 다르니 적당한 조건으로 서비스를 넘기는 방식의 제안이었다. 두 제안 모두 적당히 매력적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어떤 제안을 선택하더라도 금전적으로나 스트레스 관리 면에서나 당시보다는 나아질 것이 확실했다.
현실은 언제나 더디다.
현실은 성공한(혹은 실패한) 사람의 후기 글을 읽는 10분이나, 두세시간 안에 끝나는 영화와 다르다. 모든 것, 정말 모든 것이 시간이 걸린다. 사용자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도, 검증할 가설을 세우는 것도, 가설을 시도하고 실패하는 것에도 모두 시간이 걸린다. 당신이 얼마를 생각하든 생각하는 시간보다 몇배는 더 걸린다. 들어가는 건 시간만이 아니다. 금전적 비용, 커뮤니케이션 마찰이나 온갖 서류처리에서 오는 스트레스, 체력, 과거에 하지 않은 다른 선택(e.g. 회사를 잘 다님)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불안은 언제나 그 더딘 시간과 함께 한다.
실제의 나는 상상과 다르다.
서비스 가설에 멋지게 성공하는 나를 상상했든, 역경과 고난을 웃으며 헤쳐가는 나를 상상했든 실제의 나는 상상과 다르다. 더디게 달라지는 현실 앞에서의 나는 상상속의 나보다 나약했다. 큰 실패가(성공도ㅠ)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만 해야 할 이유들이 계속해서 생겨났다. 상황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안 좋았다면 어땠을까 상상조차 쉽지 않다. 지금의 모습도 상상 속의 내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내 사업을 하면서 가장 가치있게 배우게 되는 것은 사업적인 것들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 나는 아무도 시키지 않은 고생을 사서하고 있나 에서 이야기한 ‘해봐야만 아는 것’이다.
계속 해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만 해야 할 이유가 너무도 많았지만, 여기서 끝내기에는 뭔가 아쉬웠다. 나는 누구이고, 어떤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답을 내리기에는 부족했다.
그러나 계속 하자면, 계속 해서 생겨나는 그만 해야 할 이유들을 잠재울 수 있는 이유를, 아니 반대로 계속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유를 누군가는 사명이라고, 누군가는 미션이라고 부른다. 기업이 존속해야 하는 이유이자 구성원들이 기업에 공헌해야 하는 이유. 조직의 사명이 필요한 이유, 그 사명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사람들로만 조직을 구성해야 하는 이유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인생은 짧고, 별 거 아닌 일에 몰두하기에는 그만 해야 할 이유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적절한 사명을 찾지 못하면, 혹은 사명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돈이나 최적화라는 공허한 사명 아닌 사명에 빠지게 되는 이유도 조금 더 잘 알겠다.
다음 이야기
계속 해야 할 이유에 대해서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