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이 처음 출간된 것은 1813년이니까, 200년이 훌쩍 넘었다. 200년 넘은 책을, 아침 드라마 보는 기분으로 재밌게 읽었다. 내가 읽은 것은 번역본이라 원문의 느낌을 알기는 어렵겠지만, 문장이 세련되었달까 재기넘친달까, 쉬이 읽히고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촌스럽거나 너무 가볍지도 않았다.
200년 동안 기술은 마술보다 더 큰 변화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책을 덮으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인간의 삶 자체는 어쩌면 그리 변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아직도 식사를 하고, 서로의 마음을 떠보고, 구애하고, 사랑하며 지낸다. 아마도 인간이라는 이름의 종이 유지되는 한, 수천 수만년 정도 후에도 그러고 있을 거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을 탈퇴하고, 유튜브도 개인 정보를 삭제해서 어떤 추천도 나오지 않도록 했다. 기술에 대한 거창한 반대나 그런게 아니라, 어느샌가 보니까 내가 너무 많은 시간을 릴스나 쇼츠에 쓰고 있어서 그랬다. 수천년 전에도, 200년 에도, 우리는 지금과 비슷한 인간이었다. 생물학적으로는 지금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미디어나 광고를 비롯한 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비인간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편지를 써서 나의 마음을 전달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읽기 위해 노력하고, 함께 산책을 하고, 오해하고, 사랑하는 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이모티콘으로, 틴더의 스와이프로, AI로부터의 답으로 다씨와 엘리자베스의 사랑을 재현해낼 수 있을까? 복잡한 것을 복잡하지 않은 것으로 처리하기 위해 기술이 발전했는데, 이제는 거꾸로 기술에 속아 본디 복잡한 것을 이해하는 능력 자체를 인간이 잃어버리고 있는 중인 것 같다.
인간의 삶에서 꽤 많은 부분이 200년 정도의 시간은 쉽게 넘어갈 만큼 변하지 않은 것처럼, 경제나 사회 제도의 어떤 기초적인 부분들도 그러할 것 같다. 오랜만의 독서모임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