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
대기업을 그만둘 때 나는 스물 여덟이었다(왜 그랬니...) 촘촘히 짜여진 시스템 안에서 주어진 일들을 문제 없이 해내는 사람보다는 스스로의 것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실 이건 미화된 기억이고, 실제로 퇴사한 건 아마 그냥 좀 삐딱한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내 앞에 보이지 않는 어딘 가에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잘못된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주변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삐딱함.
스타트업에서 CTO 라는 직함을 달고 일하기를 그만둘 때의 나는 서른 넷이었다(왜 그랬어...) 기술과 관련된 역할들은 다 수행해보고, 10여명의 팀관리도 해봤다. 하지만 남은 건 아쉬움이었다. 스물 여덟의 삐딱함은 겉모습만 조금 바뀌었을 뿐 여전히 거기 있었다. 스타트업 씬에서 유행하는 방법론들을 주워 듣고는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된다고 말했다. 이미 성공한 프로덕트에서 성공의 이유를 찾기는 쉬웠고, 성공하기 전 단계에 있는 프로덕트가 실패할 이유를 찾는 것은 누워서 떡먹기였다.
그래서 나는 뭘 할 줄 아는 사람이었을까? 남들의 성공기를 잘 읽는 사람? 이렇게 하면 좋은 프로덕을 만들 수 있다류의 아티클을 많이 아는 사람? 대기업 몇 년, 스타트업 몇 년, 테크 리드, 개발자 정도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아쉬웠다. 왜냐면 난 욕심이 많고 좀 비뚠 구석이 있으니까
닥치고 스퀏
해봐야만 아는 것들
중학교때까지 시합을 나갔을 정도로 깨나 운동을 했었다. 지금은 발끝에 손도 안 닿지만, 운동을 열심히 했던 경험이 내게 남겨준 것이 있다. "해봐야 안다"는 것이다. 성취라고 부를 수 있는 대부분의 것들은 해봐야만 알 수 있는것들인데, 살다 보면 해보지 않은 것들을 해봤다고 착각하기 쉽다.
성취를 꽤나 가까이서 봤다는 사실은 내가 무언가를 해냈다는 것과는 아예 다른 이야기이지만. 옆에서 같이 운동하던 친구가 전국체전 금메달을 땄다는 사실이 나를 그 운동의 전문가인양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스타트업이라고 부르는 곳에 다니면서 수많은 스타트업의 성공과 실패를 근처에서 목격했다는 사실이 나를 프로덕트와 스타트업의 전문가로 느끼게 한다.
나는 프로덕트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착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인 지 확인하는 가장 쉽고도 확실한 질문은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해냈는가?"다. 나는 욕심이 많기 때문에 진짜이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뭐가 됐든 끝까지 해내야 했다. 그래서 아무도 시키지 않은 고생을 하고 있다.
Q. 우와 전문가시네요. 무엇을 해내셨나요?
A. 아, 제가 그 친구 금메달 딸 때 옆에서 운동하는 것을 직접 봤습니다.
...
남는 건 기록
그래서 직접 해본 사람의 글이 아닌 것은 잘 읽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읽을 것이 많이 없다. 이미 성공한 조직 내에서의 작은 성공은 과대 평가 되어 여기저기 퍼지는데, 나는 관심 없고, 성공하지 않은 사람은 바쁘거나 성공하지 못해 부끄럽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글을 잘 쓰지 않는 지 찾기가 힘들다(이런 류의 글을 아신다면 johnwook.choi@gmail.com 으로 추천해주세요...)
기록하지 않은 기억들은 미화되거나 사라지기 마련이다. 겨우 1년 정도 전의 이야기도 기억이 흐릿하다. 부끄러운 일은 기억에서 지워버렸고, 있었던 일은 실제에 비해서 훨씬 아름답게 부풀려서 기억하고 있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과거를 기록하고, 그 과거보다 한 끗씩이라도 좋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늦게나마 기록을 좀 해보려고 한다.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 일, 서비스를 만들면서 알게 된 것들, 실패한 이야기들, 성공으로 향해가고 있는 이야기들. 가장 크게는 미래의 나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도 혹시나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그런 기록을 남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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